그때는 몰랐다. 그 장면이 시간이 지나도 나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예술은 멀리 있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꾸며준다는 것. 살아 있을 때의 모습 보다 밝고 환한 얼굴로 만들어 주는 것. 오래 울고 싶은 사람이라도 그 모습을 보면 잠깐 울음을 멈추고 세상이 고요해짐을 느낀다. 시간은 충실하고 계절은 우리에게 겨울을 열린 창문으로 던져주고 간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단편「분장예술가」의 시작은 우리 시대의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보석 세공인과 패션 디자이너, 망자의 얼굴을 위로의 표정 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죽은 이의 얼굴을 꾸며주는 사람, 그를 예술가로 지칭한다. 그런 식의 예술이라면, 독특한 예술을 수행하고 있는 예술가라면 우리 러시아에도 있었다로 소설은 시작한다. 화자의 어린 동생을 돌보는 유모, 류보피 오니시모브나는 젊었을 때 카멘스키 백작 극장의 여배우였다. 그녀는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노파로 화자와 동생을 데리고 이따금 공동묘지로 산책을 나가곤 한다. 작고 평범한 무덤가에 앉아 들려준 이야기는 젊은 날 그녀의 사랑과 추억, 현재진행형인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덤가에 앉아서 분장예술가 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르카지는 유모의 극장 동료였다. 그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발사 겸 분장사였다. 유모의 말에 따르면 그러나 이 사람은 귀에 머리빗을 꽂고 피지 섞은 연지를 담은 양철판을 든,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기능공이 아니라 사상이 있는 사람, 한마디로 예술가였다는 것이다. 아르카지는 백작의 난폭한 얼굴도 겸손한 인상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작의 소유물로 오직 백작만을 위해 일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분장과 이발에 대한 수고료도 받지 못하고 외출의 자유도 누리지 못했다. 흔히 그렇듯 유모 류바와 아르카지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랑의 눈빛과 가까이 할 수 없다는 애틋함이 그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류바는 극단에서 빼어난 연기력과 대본 소화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예행연습을 하다 다친 여배우 대신 그녀는 자원해서 그 역할을 한다. 백작은 허락하면서 그녀에게 남옥 귀고리를 갖다 주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녀가 잠깐 영주의 첩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르카지에게도 가혹한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작의 동생이 찾아와 얼굴에 분장을 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의 얼굴은 피지와 털로 가득했다. 백작은 자신 외에는 아르카지가 분장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동생은 꾀를 내어 자신의 푸들 털을 깎아 달라는 조건으로 아르카지를 집으로 부른다. 류바가 연극이 끝나면 그의 손으로 성녀 세실리아처럼 분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르카지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백작 동생의 얼굴을 최고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백작의 명령을 어기고 류바와 떠날 준비를 한다. 그들은 늙은 사제의 집으로 몸을 숨긴다. 사제는 그들을 숨겨 주는 조건으로 아르카지가 백작 동생의 얼굴을 분장해 주고 받은 금화들을 챙긴다. 그들을 추격해온 사람들에게 사제는 손짓으로 그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류바는 자신이 있는 건물 아래에서 아르카지가 고문 받는 소리를 들으며 그 자신의 긴 머리로 목을 감아 자살을 시도한다. 깨어난 그녀의 머리를 백발로 변해 있었다. 아르카지는 곧바로 전선에 연대의 중사로 보내지게 된다. 삼 년 후 류바에게 아르카지의 전갈이 온다. 훈장을 받은 그는 백작에게 출두해 치료를 위해 받은 돈 오백 루블을 가지고 류바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운명은 그녀와 아르카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르카지는 돈을 노린 여인숙 주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눈물병으로 마음의 불을끄며살아간다. 유모가 화자와 동생을 이끌고 간 곳은 아르카지가 묻힌 묘지였다. 그녀는 매일 밤 집안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서 조용히 일어나 술을 마신다. 아르카지를 사랑했던 마음과 그리움을 술병으로 달래면서 마음의 불을 끄면서 이내 잠이 든다. "내가 만약 그런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말이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시킬 수가 있겠느냐? 나는 내가 정한 규칙을 아르카지에게 말했고, 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그것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그자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고, 그랬는데 만약 그놈이 감히 내 말을 어기고 나 말고 다른 누구에게든지 자기 솜씨를 발휘하는 날에는 내 그놈을 때려죽이고 군대에 보내버릴 거야." 동생이 대꾸했다. "뭐든지 하나만 하슈. 때려죽이거나 아니면 군대에 보내버리거나. 두 가지 다 할 수는 없잖우." "그럼 좋다." 백작이 말했다. "네 말대로 하지. 완전히 죽을 때까지는 때리지는 안하고. 반만 죽인 다음에 군대에 보내버리겠다." 이 소설은 인물들의 대화가 주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백작과 그의 동생이 나누는 대화에서부터 백작이 아르카지에게 명령을 내리는 부분. 소설은 러시아 소설이 주는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위트 있는 대화로 끌고 간다.제정시대의배경은소설을이루는전부는아니다.류바와아르카지는 백작이라는주인에게예속되어있는신분이지만그들은열렬한사랑을한다.류바가백작의첩이되기전아르카지는그녀를데리고도망치고결혼해서살날을꿈꾼다.세속적이고음흉한사제에게걸려그들은곧잡혀가지만아르카지는포기하지않고군대에가서공을세운다.돈을받아류바를자유로운신분으로만들어주려고했다. 누구나 알만한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그 자신이 보여준 세계를 알아주고기억해주는사람이적어도한명쯤은있다는것.죽음의순간에서인간을가장평온하고아름다운모습으로만들어준장례식장의예술가가이세계에존재한다는것. 아르카지의사랑은분장으로도가릴수없었다.그자신이살아생전흉포한백작의모습을인자한사람으로만들어주었지만그가죽음으로써백작은평온하고너그러운얼굴을영영잃어버리게되었다.우리시대의예술가란죽은자를위해 끊임없이추도하는슬픔에빠진살아남은자들이다.그것으로 예술은 완성된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이자
천재적인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레스코프의 걸작선
톨스토이가 레스코프야말로 진정한 작가다 라고 평하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대표적인 작품 세 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러시아 민중의 구체적인 실상을 재미있는 스토리로 구성하여 구어체로 실감나게 표현한 그는 일반 민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작가였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에는 러시아인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자 러시아적 정서의 원형을 보여주는 「왼손잡이」, 농노제도의 부조리와 농노들의 한(恨)을 비극적으로 형상화한 「분장예술가」, 러시아의 종교와 예술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애정이 문학으로 승화된 「봉인된 천사」가 수록되어 있다. 언어의 화려함과 빠르고 복잡한 서사로 작품에 독특한 색채와 감각을 부여한 레스코프. 이 책을 통해 러시아적 영혼의 한 단면을 만날 수 있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왼손잡이
분장예술가
봉인된 천사
해설 ㅣ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
니콜라이 레스코프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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