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여든세 살, 덕산 할머니가
오늘따라 자꾸 숨이 가쁘다는데
마을 할머니들 처방은 다 다르다.
밥을 많이 묵우서 그렇다.
밥을 많이 안 묵우서 힘이 없어 그렇다.
숨이 가빠도 밥을 많이 묵우야 낫는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숨이 가쁜데 밥을 우찌 묵노.
죽을 무야지.
야야, 고마 해라.
죽어야 낫는 병이다.
산목숨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노.
**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글픈 내용인데. 웃음이 났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서로들 다른 처방을 내리며 손을 내젓는 모습까지 연상될 정도로 생생하게 와 닿는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니 사투리의 정감이 재미를 더한다.
마지막 할머니의 말씀이 압권이다.
"죽어야 낫는 병이다. 산목숨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노."
명쾌한 처방이다.
사랑니 빼는 것이 힘들었는지.
거울속에 비친얼굴이 핼쑥하다. 꺼칠하다. 보기싫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읊조려 본다.
산목숨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노.
산목숨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노.
40년이 넘도록써 온 몸,어디라도 한구석 아프지 않은 게 되려 이상하지.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살아있음의 반증이 되기도 한다.
***
농부들이야말로 하느님, 부처님 말씀을 온몸으로 따르는 살아있는 성직자라고 말하는 농부시인 서정홍의 시들.
가난하지만 이웃과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순박함이보여주는아우라가 얼마나 큰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도 덩달아 착해지고 싶었다.
서정홍 시인이 58년 개띠 와 아내에게 미안하다 이후 10년 만에 세상에 선보이는 시집. 경남의 한 산자락에 보금자리를 튼 뒤, 직접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돌보며 얻은 생생한 경험과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온갖 자극적인 볼 것과 읽을 것이 난무하는 시대에 땀 냄새가 묻어나는 시 한 편 한 편은 읽는 이의 마음을 순하게 어루만져 준다.
시인의 말
제1부-밥 한 그릇
봄소식 / 이장님 / 살아 있는 모든 것 / 모심는 날 / 완행버스 안에서 /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 봄날 / 마을 잔칫날 / 나이 / 밥 한 그릇 / 서울로 간 제사 / 패랭이꽃 / 사람이 그리운 날
제2부-아름다운 시절
하루 / 매실주 담그면서 / 동지 / 말하지 않아도 / 정든 것끼리 정붙이고 / 목숨 같은 /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 지금까지 / 어떤 하루 / 고모 / 심사위원 / 아름다운 시절 1 / 아름다운 시절 2 / 아름다운 시절 3 / 아름다운 시절 4 / 아름다운 시절 5 / 저녁 무렵
제3부-마지막 뉴스
이른 아침에 / 가지치기 / 요셉 할아버지 / 쌀장사와 쌀농사 / 쌀밥 / 쌀값 / 어머니의 우리 밀 사랑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 사월 / 마지막 뉴스 / 슬픈 까닭 / 농부가 되는 길 1 / 농부가 되는 길 2 / 농부가 되는 길 3 / 농부가 되는 길 4 / 친환경농업 교육장에서
제4부-그리움 다 남겨 두고
그리움 다 남겨 두고 / 겨울 햇살에 / 수동 할매도 일하는데 / 그 힘은 어디서 / 원동 할머니 / 함박골 어르신 / 처방 / 순만이 형 / 여름 한낮 / 성수네 집 짓기 / 농사 일지 1 / 농사 일지 2 / 농사 일지 3
제5부-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한데 어울려 / 사장과 시인 / 감자를 먹으면서 / 시를 읽다가 / 이영선 신부님 /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 시를 쓰면서 /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 시인이란 / 언제부턴지 / 다른 까닭 / 세계는 하나 / 이대로 가면 / 다른 건 몰라도 / 꿈 / 시인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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